김아랑 작가의 “어느 날, 아무 일 없어서 더 좋았던 시간”
K-민화 이성준 기자 | 김아랑 작가의 "어느 날"은 사건이 없는 하루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화면 위에는 화려한 상징들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과시하지 않는다. 책거리 형식 위에 놓인 동백꽃과 복숭아, 실타래와 고양이는 전통 민화의 길상적 요소를 빌려오되, 해석은 매우 사적이고 현대적이다. 특히 화면 아래에서 실타래를 잡아당기는 고양이의 모습은 이 작품의 정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치다. 고양이는 장난스럽고 자유롭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한 존재다. 그 위에 놓인 책과 기물들은 지식과 질서, 삶의 구조를 상징하지만, 고양이의 실타래 한 가닥에 의해 그 긴장감은 부드럽게 풀어진다. 이 작품에서 ‘나’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대신한다. 즐거운 존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선,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는 태도는 오늘날 점점 사라져가는 감정의 방식이다. 김아랑의 민화는 설명보다 여백으로 말하고, 교훈보다 공기로 전해진다. 〈어느 날〉은 묻는다. 행복은 정말 거창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 하나면 충분한가. 그래서 이 작품은 복을 말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고, 길상을 담고 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