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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랑 작가의 “어느 날, 아무 일 없어서 더 좋았던 시간”

- 평범함이 건네는 위로...무엇을 말하지 않느냐에 있다.

K-민화 이성준 기자 |  김아랑 작가의 "어느 날"은 사건이 없는 하루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화면 위에는 화려한 상징들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과시하지 않는다. 책거리 형식 위에 놓인 동백꽃과 복숭아, 실타래와 고양이는 전통 민화의 길상적 요소를 빌려오되, 해석은 매우 사적이고 현대적이다.

 

 

특히 화면 아래에서 실타래를 잡아당기는 고양이의 모습은 이 작품의 정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치다. 고양이는 장난스럽고 자유롭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한 존재다. 그 위에 놓인 책과 기물들은 지식과 질서, 삶의 구조를 상징하지만, 고양이의 실타래 한 가닥에 의해 그 긴장감은 부드럽게 풀어진다.

 

이 작품에서 ‘나’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대신한다. 즐거운 존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선,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는 태도는 오늘날 점점 사라져가는 감정의 방식이다. 김아랑의 민화는 설명보다 여백으로 말하고, 교훈보다 공기로 전해진다.

 

〈어느 날〉은 묻는다.
행복은 정말 거창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 하나면 충분한가.
그래서 이 작품은 복을 말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고, 길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조용하다. 민화가 지닌 본래의 힘, 즉 삶을 위로하고 마음을 풀어주는 기능이 오늘의 감성으로 되살아난 순간이다.

 

작가 노트 김아랑
이 그림은 특별한 날을 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을 떠올리며 시작했다.

 

나른한 오후,
즐거워 보이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좋았던 시간.

 

그 순간에는 설명도, 이유도 필요 없었다.
그저 그 장면이 오래 지속되길 바랐을 뿐이다.

 

고양이는 그 마음을 대신하는 존재다.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고,
작은 실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다하는 존재.

 

이 그림을 보는 분들이
각자의 ‘어느 날’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작업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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