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김선예 작가의 탄탄대로 얼쑤!는 이름 그대로 새해의 희망과 축복이 한 폭에 터져 나오는 세화歲畵이다. 화면 가득 펼쳐진 붉은색·분홍색의 북청사자놀음은 전통의 흥겨움 속에서 우리 민족의 기운氣運과 염원念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두 마리 사자는 해학과 생명력을 품은 표정으로 화면을 주도하며, 사자춤을 추는 인물들과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레 축제의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은 작가가 제목에 담은 대로 ‘탄탄대로坦坦大路’의 앞날이 평탄하기를 기원하는 길이다. 작품 속 인물 하나하나가 지닌 자세와 표정, 휘날리는 천과 흩날리는 꽃잎은 설날의 들뜬 마음, 잘되기를 바라는 기원, 그리고 모든 날이 축제가 되길 바라는 소망을 색채와 움직임으로 펼쳐낸다. 화면 위로 날아오르는 나비와 아이는 풍요와 재복을 상징하며, 사자의 등 위에서 환히 웃는 아이는 “새해에는 웃음이 절로 피어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또한 전통 민화 특유의 평면적 구도 안에서 작가는 섬세한 필치와 현대적 감각을 더해, 옛 형식이 단순한 복고가 아닌 살아 있는 K-민화의 현재성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자의 털 표현은 색채의 농담과 결의
K-민화 이성준 기자 | 청연淸然 강경희의 작품 세계는 ‘보여주는 회화’ 이전에 ‘머무르게 하는 회화’다. 그의 캘리그라피는 글자를 쓰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씻는 수행의 흔적에 가깝다. 번짐과 여백, 멈춤과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는 먹의 호흡 속에서 문장은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관람자의 마음을 고요로 이끈다. 특히 화면을 가르는 먹의 농담과 파편처럼 흩어진 여백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사유의 속도를 되돌려 놓는다. 강경희의 캘리는 ‘강하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말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는 선禪의 언어이자, 동양 회화의 본령이다. 함께 제시된 K-민화 책거리 작품은 전통 민화의 길상적 상징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책과 문방구, 붓과 화병, 그리고 화면 전면에 놓인 수박은 단순한 정물이 아니다. 수박은 풍요와 생명, 책은 지혜와 축적, 붓은 창조와 실천을 상징하며, 이 모든 요소는 ‘삶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강경희의 민화는 화려함보다 단정함, 과시보다 정갈한 질서를 택한다. 색은 말하고, 형태는 절제하며, 상징은 조용히 숨 쉰다. 이것이 바로 K-민화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방식임을 그의 작
K-민화 이성준 기자 | 김아랑 작가의 "어느 날"은 사건이 없는 하루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화면 위에는 화려한 상징들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과시하지 않는다. 책거리 형식 위에 놓인 동백꽃과 복숭아, 실타래와 고양이는 전통 민화의 길상적 요소를 빌려오되, 해석은 매우 사적이고 현대적이다. 특히 화면 아래에서 실타래를 잡아당기는 고양이의 모습은 이 작품의 정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치다. 고양이는 장난스럽고 자유롭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한 존재다. 그 위에 놓인 책과 기물들은 지식과 질서, 삶의 구조를 상징하지만, 고양이의 실타래 한 가닥에 의해 그 긴장감은 부드럽게 풀어진다. 이 작품에서 ‘나’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대신한다. 즐거운 존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선,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는 태도는 오늘날 점점 사라져가는 감정의 방식이다. 김아랑의 민화는 설명보다 여백으로 말하고, 교훈보다 공기로 전해진다. 〈어느 날〉은 묻는다. 행복은 정말 거창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 하나면 충분한가. 그래서 이 작품은 복을 말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고, 길상을 담고 있으면서
K-민화 이성준 기자 | 백찬희 작가의 송학도는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이다. 소나무와 학이라는 상징은 이미 수백 년 동안 한국인의 삶 속에서 길상과 장수, 평안을 말해왔다. 이 작품은 그 오래된 언어를 다시 꺼내어, 오늘의 시선으로 조용히 건넨다. 소나무는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절개와 생명력의 상징이다. 학은 고결함과 장수를 의미하며, 두 마리가 함께 등장할 때는 화합과 평안이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백찬희 작가는 이 익숙한 상징들을 과장하거나 해체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정직한 자리, 가장 안정된 구도 속에 배치한다. 특히 두 마리 학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경쟁도 긴장도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삶의 태도에 대한 은유다. 빠르고 불안한 시대일수록, 이 그림은 ‘함께 오래 머무는 삶’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 작품이 가진 미덕은 절제다. 색은 화려하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형태는 섬세하지만 과시적이지 않다. 전통 민화가 지녔던 기원의 기능, 즉 그림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고 삶을 축원하던 본래의 역할이 충실히 되살아난다. 송학도는 새해를 맞이하는 그림이자, 한 해를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조용한 제안이다.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