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강경희 기자 | 이 k-그라피 작품의 첫 문장은 선언에 가깝다. 「청하淸河를 읽다. 」, 맑음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파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가능성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이며, 세상과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임을 글과 획으로 증명해 보인다.
“사람은 맑은 사람에게 끌리고, 바람은 맑은 강물로 내려온다.” 작품 속 이 문장은 미문美文이기 이전에 삶의 법칙처럼 읽힌다. 계산과 소음이 가득한 시대일수록, 사람은 더욱 맑은 곳을 향해 이동한다. 권력이나 요란한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 흐르며 낮아지는 존재에게 마음은 끌린다. 성파의 글씨는 바로 그 ‘낮아짐의 힘’을 품고 있다.
이어서 작가는 말한다. “이익을 취함에 스스로 부끄럼 없으니 맑고 세상살이 물처럼 흐르니 이 또한 맑도다.” 여기서 ‘맑음’은 도덕적 완벽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아는 감각, 그리고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는 태도가 맑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오늘의 사회를 향한 조용하지만 분명한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취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까지 흐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단에 병기된 한문 구절은 작품의 정신을 더욱 단단히 붙든다.
人濁爲引以淸心 / 風當沐者於淸河 / 得物渡量無愧戱 / 對世處事如流水
사람은 스스로를 씻어 마음을 맑히고, 바람은 맑은 강에서 몸을 적시며, 얻음에 한도를 넘지 않고, 세상을 대함에 물처럼 흐르라는 뜻이다. 성파 작가의 필치는 과시하지 않는다. 획은 단정하지만 고요하지 않고, 힘이 있으되 공격적이지 않다. 마치 수행자의 걸음처럼, 빠르지 않으나 멈추지 않는다. 이 균형감이야말로 이 작품의 미학이자 윤리다.

이 작품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맑음은 세상을 떠나는 선택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을 잃지 않는 방식이라는 것. 흐름은 포기가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은 용기라는 것... 그래서 이 글씨는 장식이 아니라 거울이다.
읽는 순간,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나의 말은 맑은가. 지금 나의 선택은 흐르고 있는가. 성파의 글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맑아질 수 있는 자리를 조용히 내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