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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이미형 교수의 “행렬도가 말하는 공동체의 미학”

- 수백의 발걸음, 하나의 방향, 현대적 시선으로 읽는“행렬도”
- K-민화가 서사와 철학을 동시에 품을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K-민화 이성준 기자 |  행렬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이며, 공동체가 공유한 질서의 시각적 선언이다. 이미형 교수의 ‘행렬도’는 이 오래된 개념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며, ‘질서의 미학’이 어떻게 예술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인물과 기물, 깃발과 악대, 의장대의 반복적 배열은 혼잡이 아니라 리듬을 만든다. 수백의 형상이 등장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무질서하지 않다. 각각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전체는 하나의 방향으로 흐른다. 이 작품에서 행렬은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공동체의 호흡이다.

 

전통 행렬도의 본질은 기록성과 상징성의 결합에 있다. 역사적 사건을 남기면서도, 그 사건이 지닌 위계·예법·미감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미형 교수는 이 전통적 형식을 충실히 따르되, 색과 간결한 필치, 과감한 화면 분할을 통해 현대적 시선을 더한다. 덕분에 작품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관람자에게 말을 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거리감’의 처리다. 개별 인물은 소략하게 그려졌지만, 군집은 오히려 또렷하다. 이는 개인보다 질서와 관계가 중심이 되는 행렬도의 미학을 정확히 이해한 결과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오늘의 사회를 향한 은유로도 읽힌다.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충돌하는 시대에, 이미형 교수의 행렬도는 묻는다. “우리는 지금,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가.” 예술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질문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던진다.

 

결국 이 행렬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질서가 사라진 시대를 위한 시각적 성찰이다. 이미형 교수의 ‘행렬도’는 전통 회화가 여전히 현재형일 수 있음을, 그리고 K-민화가 서사와 철학을 동시에 품을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