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K-민화와 민화한복이 만나는 ‘세화 특별전’이 오는 2026년 1월 1일부터 5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새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던 전통 세화歲畵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K-민화 전시와 민화한복 패션, 문화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융복합 특별전으로 기획됐다. 특히 세화 특별전 “어서 오세요” “벽사초복僻邪招福·服”을 주제로, 민화가 지닌 민간적 상징성과 한복의 조형미를 결합해 전통 예술이 오늘날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세화 특별전은 K-민화를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입고 걷고 경험하는 K-컬처 콘텐츠로 확장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전시의 의미를 담아, 담화총사는 「K-민화가 지구촌 민간民間 시대를 연다」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을 통해 세화전이 지닌 문화적·외교적 함의를 짚는다. = 동영상 =
K-민화 강경희 기자 | 대한민국 초고령 103세 혁필 연구가 남상준 선생은 1965년부터 1984년까지 중국·일본 문자와 영어 알파벳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혁필화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며 예술적 기틀을 다졌습니다. 1977년 이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혁필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쌓았습니다. 2000년대에는 일본 오사카를 비롯한 전국 백화점과 축제에서 순회 전시 및 시연을 통해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고, 국내외 교민들을 대상으로 혁필을 가르치며 전통 계승에 힘써 왔습니다. 또한 서울특별시 전통문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교육과 전시를 이어왔으며, 2023년에는 서울공예박물관 등에서 초청 교육을 진행해 혁필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전통예술을 대중과 다음 세대에 전해온 그의 행보는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교육 공간 및 운영 안내 이번에 세계평화미술대전 조직위원회는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 12층에 교육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남상준 명인에게 무상 개방합니다. 수강생 모집: 수시 모집 수업 일정: 월·화·금·토요일 오후 2시~5시 장소: 종각역 1번
K-민화 이존영 기자 | 민화 속 호랑이는 늘 두 얼굴을 지닌다. 산군山君으로 불리며 두려움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딘가 어수룩한 표정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김영민 작가의 '까치와 호랑이'는 바로 그 이중성의 미학을 정면에서 드러낸다.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 호랑이는 크고 위압적이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표정에는 공포보다 당황이 먼저 읽힌다. 이는 절대 권력의 형상이 아니라, 권력의 허점을 드러낸 얼굴이다. 민화의 호랑이가 무서운 이유는 힘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무섭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위와 주변을 맴도는 까치들은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이다. 까치는 고고하지 않다. 대신 재잘대고, 움직이고, 거리낌 없이 접근한다. 까치는 민중의 목소리이며, 질문하는 존재다. 호랑이를 향해 울부짖지 않고, 겁먹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알리고, 웃는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새끼 호랑이들의 등장이다. 어른 호랑이의 위세는 흉내 내지만, 아직 그 힘을 알지 못한다. 이는 권력이 학습되고 재생산되는 구조를 은근히 드러내며,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암시한다. 민화의 풍자는 늘 이렇게 부드럽지만 정확하다. 김영민의 색채
K-민화 이존영 기자 | 금강산은 늘 하나의 질문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봉우리를 한 화면에 담을 것인가. 그리고 더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그 산을 어떻게 오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볼 것인가. 하미숙 작가의 '정선의 금강전도'는 이 두 질문에 동시에 답한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정수인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충실히 존중하면서도, 모사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을 채운 수많은 봉우리들은 위계 없이 솟아오르며, 산은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집합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에서 산은 배경이 아니다. 각각의 봉우리는 하나의 인격처럼 서 있고, 능선은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처럼 겹쳐진다. 붓의 반복은 노동에 가깝고, 색의 절제는 묵언의 수행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본다’기보다 ‘들어간다’는 감각을 준다. 관람자는 어느새 금강산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금강산 속을 걷는 존재가 된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실경을 통한 세계 인식’이었다면, 하미숙 작가의 금강전도는 ‘기억을 통한 세계 복원’이다. 실제로 갈 수 없는 산,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산. 이 그림은 분단과 단절의 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산은 사라졌는가, 아니면 우리가
K-민화 이존영 기자 | 【담화총사 칼럼】 문배도는 문 앞에 걸리는 그림이지만, 그 본질은 공간을 지키는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세우는 그림이다. 김현정 작가의 '광화문 금갑장군문배도'는 그 사실을 오늘의 시선으로 또렷하게 증명한다. 이 작품 속 금갑장군은 위협적이기보다 단단하다. 분노로 악귀를 몰아내는 장수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이미 질서를 완성한 존재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과장이 없고, 굳게 다문 입에는 소란이 없다. 이는 싸우기 위해 서 있는 장수가 아니라, 이미 이긴 상태로 서 있는 장수의 얼굴이다. ‘광화문’이라는 지명은 이 작품의 상징을 더욱 확장시킨다. 광화문은 단지 궁궐의 문이 아니라, 국가의 얼굴이자 공공의 문이다. 김현정 작가의 금갑장군은 개인의 집 앞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 앞에 세워진 수호신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사적인 벽사가 아니라, 공적 질서에 대한 선언처럼 읽힌다. 색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전통 문배도의 상징색을 따르되, 금색과 주황, 자색의 대비를 통해 장엄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품는다. 금갑은 위엄을 상징하지만, 화면 전체의 리듬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다. 이는 공포로 막는 벽사가 아니라, 품격으로 지켜내는 수
K-민화 강경희 기자 | 죽필과 혁필 또한 K-그라피의 본질적 영역이다. 대나무를 깎아 결기로 찍는 죽필은 수행과 절제의 미학을 담고, 가죽 붓으로 속도와 리듬을 살리는 혁필은 소통과 확장의 언어가 된다. 이 두 붓은 한국적 필법의 깊이와 역동성을 함께 보여주며 K-그라피를 전통에서 세계로 이끄는 양대 축을 이룬다. 전통 서예의 세계에는 서로 닮았으나 전혀 다른 두 갈래의 붓이 있다. 하나는 죽필竹筆이고, 다른 하나는 혁필革筆이다. 둘 다 ‘붓’이라 불리지만, 이 두 도구는 쓰는 방식도, 담아내는 정신도, 향하는 방향도 다르다. 죽필과 혁필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곧 전통 예술이 어떻게 수행의 길과 소통의 길로 나뉘어 발전해 왔는지를 읽는 일이다. 죽필, 마음을 찍는 도구, 죽필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다. 털이 없고, 먹을 머금지도 않는다. 그래서 죽필의 획은 부드럽지 않다. 오히려 거칠고 단호하며, 한 번 그으면 되돌릴 수 없다. 이 도구 앞에서는 망설임이 곧 실패가 된다. 죽필 서예는 기술보다 태도를 요구한다. 손의 떨림은 곧 마음의 흔들림이고, 획의 기울기는 곧 정신의 방향이다. 그래서 죽필은 오랫동안 선승과 수행자들의 도구였다. 글씨를 쓰기 위해 붓을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된다. 이것이 글씨인가, 그림인가를, 김나은 작가의 K-그라피는 그 질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글자는 더 이상 의미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고, 그림은 더 이상 장면을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글과 그림은 함께 숨 쉬며 하나의 생명이 된다. 작품을 가로지르는 두 마리의 금붕어는 부유하듯 헤엄치는 이 생명체는 민화의 전통적 길상吉祥을 닮았지만, 그 표현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비늘 하나하나에 담긴 색의 농담은 오늘의 감각이고, 유영하는 방향에는 규칙도, 구속도 없다. 그 옆에 놓인 글씨는 ‘읽히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해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획은 물결처럼 번지고, 먹은 숨결처럼 스며든다. 이 글씨는 말한다기보다 살아 있다고 해야 옳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캘리그래피가 아니다. 장식적 문자도 아니다. 김나은 작가의 작업은 K-그라피의 본질에 정확히 닿아 있다. K-그라피란 무엇인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기술이 아니라, 한국적 정신과 감각을 붓의 행위로 드러내는 문화 언어다. 문자와 회화, 사유와 감정, 전통과 현재가
K-민화 이존영 기자 | 이 그림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소박한 민화’라는 고정관념에 머물 수 없다. 한현숙의 작가의 '비파공작'은 민화가 지닌 길상성에 당당한 아름다움과 존재의 위엄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작품을 가득 채운 공작은 숨기지 않는다.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공작의 자세는 과시가 아니라 자각이다. 자신의 빛을 아는 존재만이 이토록 고요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공작은 예로부터 부귀, 영화, 덕성을 상징하는 길상 조류였지만, 이 작품에서 공작은 상징을 넘어 완성된 존재의 태도로 등장한다. 비파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는 풍요와 다산, 결실의 의미를 품고 있다. 이 풍경은 우연한 장식이 아니다. 비파는 긴 시간의 축적 끝에 맺히는 열매다. 즉, 이 그림의 화려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공작의 찬란한 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색채의 운용은 절제 속의 화려함이다. 녹청과 군청, 황금빛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살린다. 이는 K-민화가 지닌 미덕, 즉 ‘조화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결과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장식적이지만 가볍지 않다. '비파공작'은 말한다. 진짜 복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
K-민화 이존영 기자 | 유성만 작가의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속도가 느려진다. 유성만 작가의 '休휴식'은 무엇을 보여주기보다, 보는 이를 잠시 내려놓게 만드는 그림이다. 숲은 빽빽하지만 답답하지 않다. 나무들은 서로 기대지 않으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서 있고, 화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스며 나온다. 이 빛은 태양도, 인공의 조명도 아니다. 마치 숲 자체가 숨을 쉬며 내뿜는 호흡처럼 느껴진다. 쉼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존재가 제 자리를 회복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태임을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한다. 화면 속 작은 새 한 마리는 이 숲이 정지된 공간이 아님을 알려준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생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이 ‘휴休’는 정적이 아니다. 한자 ‘休’가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 쉼을 얻는 형상인 것처럼, 이 그림의 쉼은 자연에 몸을 맡긴 채 다시 살아갈 힘을 고르는 과정이다. 유성만 작가의 숲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절제된 색과 반복되는 수직의 리듬은 마음의 파동을 가라앉힌다.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쉼은 종종 소비의 형태를 띠지만, 이 작품은 말한다. 진짜 쉼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 상태, 그저 존재로
K-민화 이존영 기자 | 모란은 늘 부귀의 상징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연희 작가의 '괴석모란'에서 모란은 단순한 풍요의 꽃이 아니다. 이 꽃은 견딘 자리에서 피어난 결과다. 작품 아래를 차지한 괴석들은 매끈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바람과 비, 시간을 견뎌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위에 모란이 선다. 화려함은 위에서 오지 않고, 아래의 무게에서 자라난다. 이 작품에서 괴석은 배경이 아니라 주체다. 뒤틀린 돌의 윤곽은 삶의 굴곡을 닮았고, 모란의 줄기는 그 굴곡을 피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틈을 비집고 올라와 꽃을 맺는다. 이는 “잘 갖춰진 자리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버틴 시간 위에 얹힌 성취를 말한다. 꽃의 색 또한 의미심장하다. 자주와 황금의 대비는 과시가 아닌 축적의 색이다. 같은 모란이 반복되지만 단조롭지 않은 이유는, 각 꽃이 서 있는 돌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반복은 획일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리듬을 드러낸다. 부귀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각자의 사연을 지닌 여러 얼굴로 존재한다. k-민화의 미덕은 언제나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 데 있다. 이연희 작가의 '괴석모란'은 고난을 지워버리지 않는다. 대신 고난을 지지대로 삼는다. 그